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끄적끄적

스미다

by toribella 2025. 5. 26.

 

스미다 작품 감상평

작품 ‘스미다’를 바라보며 처음 떠오른 감정은 ‘잔잔한 침잠’이었다. 마치 물에 잉크 한 방울이 천천히 퍼지듯, 색이 감정을 타고 스며드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. 그림 속 인물의 윤곽은 또렷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모호함이 더 깊은 존재감을 안긴다.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얼굴이지만, 그것이야말로 우리 내면의 감정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. 누구나 마음속에 분명한 형체를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안고 살아간다. 이 작품은 그 형체 없는 감정을 물감처럼 스며들게 하여 눈으로 보게 만든다.

‘스미다’라는 단어는 단순히 ‘스며든다’는 뜻 이상이다. 감정이, 기억이, 혹은 어떤 순간이 조용히, 그러나 확실하게 내 안으로 들어오는 상태라고 생각한다. 그건 폭발적이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다. 이 작품에서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. 분홍빛에서 보라, 그리고 푸른색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은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감정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 같다. 한 사람의 하루, 혹은 일생을 비추는 감정의 흐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. 처음에는 따뜻하고 가볍지만, 시간이 흐를수록 차분하고 깊어지는 느낌이 인상적이다.

색채의 조화도 매우 뛰어나다. 이 작품은 수채화 특유의 투명함과 흐름을 최대한 활용하여 공기처럼 가볍고, 동시에 물처럼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. 경계가 흐릿한 이 색채는 강렬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. 그 이유는 아마 직접적인 메시지보다 ‘느낌’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.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을 때, 우리는 종종 색에 기대곤 한다. 이 그림은 말보다 앞서 와닿는 색의 언어로 이루어진 시 같다고 느껴진다.

나는 이 작품을 보며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버린 기억들을 떠올렸다.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. 아련한 후회, 지워지지 않는 고마움, 혹은 이름 모를 그리움 같은 것들이다. 그런 감정들은 격렬하게 다가오지 않고, 어느 날 문득 가만히 떠오르곤 한다. 이 작품이 주는 분위기 역시 그러하다. 보는 순간 모든 감정이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,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. 마치 마음의 결을 따라 물드는 색처럼, 나 역시 이 작품에 천천히 물들어 갔다.

‘스미다’는 감정의 침잠이자, 기억의 되새김이며, 존재의 흔적이다. 이 작품은 나에게 내면의 고요함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. 누군가에겐 치유로,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다가올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. 그리고 그 모든 해석은 틀리지 않다. 왜냐하면 이 작품은 강요하지 않고, 그저 조용히 다가와 스며드는 그림이기 때문이다. 마치 감정이 그려낸 풍경처럼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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